정보나노소재공학
20090093
권화진
단기 어학연수. 짧다면 짧고, 또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4주 동안의 어학 연수 생활이 평생 잊지 못할 경험과 추억이 될 것만 같다. 여태껏 살면서 해외를 나가게 된 일은 고등학교 1학년 때 4박 5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수학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때의 아쉬움 때문인지 이번 어학연수 기간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보내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새가 되어 하루에 새로운 것을 하나라도 배우겠노라 다짐했고, 하루하루 생활을 일기장에 기록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와 다른 필리핀에서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고, 흔히 알고 있는 영국과 미국의 영어가 아닌 필리핀에서의 영어도 느껴보고 싶었다.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해 왔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물론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화를 할 때 머릿속에서 영어 단어들만 맴돌고 입 밖에 뱉어 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란걸 깨달았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조차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어학연수 1주 째에는 거의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로 지내왔지만, Anna, Diana, Kat이 친절하게 지도해주신 덕분에 내 자신이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 Vanessa, Shiela 선생님들도 학생 개개인에게 일상적인 대화로 영어를 좀 더 익숙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수업은 문법수업, Drama Acting 수업, Chatter Box수업, Toiec 수업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수업이 우리에게 빛과 소금과 같은 소중한 수업이었다. 수업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여야 할 것인지 새로운 다짐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필리핀을 가기 전에는 다른 과, 다른 학년,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함께 떠나게 된 20명의 멤버들과 4주라는 시간동안 친해질 수 있을까 많은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4명씩 반을 나누고, Woodridge라는 같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우리는 서로를 소중한 인연들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 또, 연수초기에 방과 후 다같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주말엔 함께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멤버들과 다함께 빠른 시간에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려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땅을 밟았을 때의 첫인상은 ‘정말 덥다. 진짜 덥다’였다. 비행기로 불과 4시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인데도 날씨가 정말 극과 극이었다.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날씨 때문에 신기하기도 했고, 또 너무 더우면 어떻게 지내나 걱정도 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여유로워 보였고, 음식이 상하기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들이 우리가 먹던 음식과 다르게 짠맛이 강했다. 또, 편의점에 파는 아이스크림은 빨리 녹기 때문에 크기가 작게 나온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달랐다. 우리가 생활한 Mckinley Hill은 비교적 부유한 마을이라 실내에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바깥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겨울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주말에 여행을 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외로 갈 때 본 풍경은 정말 TV나 인터넷 기사에서만 보던 필리핀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지 하나만 걸치고 돌아다녔고, 전기도 잘 들어오지도 않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집에서 생활 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래서 필리핀은 옷 하나로도 빈한 사람과 부한 사람을 판단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구나 새삼 생각들었다. 우리가 지내온 Woodridge 앞 공원에도 초록색 벽하나 차이로 판자촌과 도시를 구분해 놓았었는데, 그만큼 필리핀에는 아직도 심한 빈부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또 다른 차이점은, 쇼핑몰이나 가게를 들어갈 때면 항상 입구에 가드들이 서 있고,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한다는 것이다. Diana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2년전 필리핀에서 큰 테러사건이 일어나 그 때부터 항상 소지품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막상 처음 필리핀에서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땐 낯설고 꺼려졌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왠지 가게에 들어갈 때 내 가방을 열어 보여주어야 할 것 만 같은 착각이 든다. 또 다른 점은 교통문제이다. 필리핀은 차선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교통상황이 최악이었다. 중앙선을 넘나드는 질주는 기본이며, 빈틈만 보이면 차를 들이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차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필리핀은 택시요금이 싼 편이라 우리는 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택시를 탈 때면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학교 측에서 주말이면 다함께 시외로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스케줄을 짜 주었다. 가장 처음 여행 한 곳은 팍상한(Pagsanjan) 폭포였는데, 그곳의 대자연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작은 배에 3명씩 타고 앞뒤로 뱃사공이 계곡의 역류를 타고 폭포까지 올라가는데 그곳에는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마어마한 자연이 숨쉬고 있었다. 땟목을 타고 폭포물을 시원하게 맞고 내려오는 것을 코스로 하는데 정말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을 정도로 멋진 경험을 했다. 두 번째 여행지는 마따뿡까이(Matabungkai) 리조트였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와 다른 바다를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모래사장이 흰 빛이였고, 그래서 바닷물은 더욱더 맑아보였다. 또한 바닷물의 온도가 차지 않아서 누구든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 들 수 있었다. 배타고 멀리 나가 스노쿨링을 하였는데, 스노쿨링을 하면서 바닷속의 열대어와 산호초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여행지는 캐논 코브(Canon cove) 리조트였는데, 이곳은 마따뿡까이 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굉장히 큰 리조트였다. 이 외에도 주말에 팀원들과 함께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라는 곳도 여행 하였는데, 인트라무로스 유적지 곳곳을 걸어 다니면서 필리핀에서의 가톨릭 문화 역사를 볼 수 있었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 였기 때문에 가톨릭 문화가 널리 퍼졌고, ‘리잘’이란 사람의 독립운동으로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리잘파크를 지나가며, 필리핀 사람들에게 리잘이란 사람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소중한 인물이란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한국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하며 말을 걸어 주었고,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이 우릴 볼때면 ‘빨리빨리!’란 말을 웃으면서 하곤 하였는데, 여유로운 필리핀 사람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각박하고 빠른 일상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나 생각 들었다. 필리핀 현지에도 생각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한인 거리에는 정말 모든 간판이 한국어로 적혀있었다. 그만큼 필리핀 내에서 한국의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Anna, Diana, Kat, Vanessa, Shiela의 정성어린 편지를 선물받기도 하였고, Woodridge를 떠나는 그 시간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또, 항상 말없이 기숙사에서 우리를 지켜주던 가드들과도 아쉬움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의 주말여행 가이드였던 Enderun College 학생 동현이와도 그동안 많은 정이 들었다. 4주내내 잊지 못할 하루들을 보냈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감문을 쓰고 있는 지금도, 벌써부터 필리핀에서의 생활과 필리핀에서 알게 된 인연들이 그리워진다.